토요일 오전 7시는 공기조차 정지해 있는 듯한 고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이 시간은 일주일 중 가장 밀도 높은 대화의 장이 된다. 아내의 강의 수강을 위해 동행하는 40분. 엔진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차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희한하게도 거실의 소파보다 훨씬 더 내밀한 고백들을 끌어낸다. 서로의 서운함과 감사함이 교차로를 지나듯 자연스럽게 오가고, 우리는 그 이동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내면과 나란히 달린다.
가산 디지털 단지의 거대한 빌딩들이 무채색의 장벽처럼 늘어선 도로 위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끼어들었다. 뒤차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내뱉은 날 선 고함. "왜 이렇게 느리게 갑니까!"
앞은 이미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속도를 요구하는 그의 분노는 논리적이지 않았다. 나 역시 창문을 내리고 똑같이 맞받아쳤다. "차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빨리 갑니까!"
창문을 올린 뒤에도 불쾌한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내 차가 경차이기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확신, 소위 '도로 위의 계급론'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가슴 끝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아내를 내려주고 운동화 끈을 묶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빌딩 사이로 가파르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아스팔트 위의 미세한 먼지들을 일깨울 무렵, 내 발걸음은 비로소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지면을 차는 규칙적인 충격이 발목을 타고 뇌로 전달될 때마다, 조금 전의 날카로웠던 감정들이 파편화되어 흩어졌다. 1km, 2km... 숨이 가빠질수록 머릿속의 소음은 단순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가 화를 낸 대상은 정말 '나'였을까?
그는 토요일 아침의 정적을 즐길 틈도 없이, 어쩌면 생존을 위한 치열한 출근길 위에 서 있었을 것이다. 지각의 문턱에서 초조함에 쫓기던 그에게, 도로 위의 내 경차는 정체의 원인이 아니라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쏟아부을 가장 만만한 '감정의 분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팽팽하게 당겨진 '직선의 시간' 속에 갇혀 있었고, 나는 사랑하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완만한 '곡선의 시간' 속에 있었다.
결국 우리는 같은 아스팔트 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밀도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5km를 다 달렸을 때, 땀방울과 함께 분노도 증발해 버렸다. 그 남자의 조급함이 나의 여유를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날 선 마음은 어느덧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도로는 속도로 서열을 매기려 들지만, 삶은 그 속도 너머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의 결을 유지하느냐로 그 가치가 정해진다.
나는 다시 경차의 시트에 앉았다. 차체는 작고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내 마음이 머무는 풍경은 아까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해져 있었다.
